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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recious Memories/Travel Essay

꿈의 공작소 몽마르뜨



몽마르뜨 사크레쾨레

만의 도시, 연인의 도시, 자유의 도시... 무수한 수식어로도 충분히 설명되지 않는 곳 파리.
이 곳에서 나만의 새로운 수식어를 찾아냈다. 
바로 꿈 공작소!


Bonjour~ 파리와의 첫인사를 나눈다. 짧은 시간동안 많은 것들을 둘러봐야겠단 생각에 숙소엔 가방만 던져놓고 '화려한 밤을 위해 물랑루즈로 찾아가리라' 굳게 맘먹었던 나는 왠걸... 긴 비행시간과 최고의 성능을 갖춘 에어컨 덕분에(?) 도착하자마자 쓰러져버리고 말았다. 그 아쉬움이 남아서인가. 자타가 공인하는 완전한 야행성인 내가 해가 완전히 뜨기도 전에 눈이 떠졌다. '이런 마음가짐이라면 뭔들 못해낼까'라는 생각을 하면서도 이런 내 모습에 약간의 기특함도 느낀다. '그래, 부지런한 새가 먹이도 하나 더 먹을 수 있다'고 했다. '부지런한 여행자가 하나라도 더 보고, 하나라도 더 많은 것을 느낄 수 있다'고 되뇌이며 파리와의 첫 인사를 나눈다.




스름하니 동이 터오기 시작한다. 패션의 도시인 만큼 옷매무새를 다시한번 확인하고 길을 나선다. 아직까지 상점들은 굳게 닫혀있고, 길가에 사람들은 보이지 않지만 이런 모습도 꽤 괜찮다는 생각을 하며 골목 여기저기를 다녀본다. 처음보는 곳임에도 불구하고 꼭 우리동네 골목길을 다니는 것처럼 편안함이 느껴진다. 아마도 사람사는 곳에는 사람의 향기가 나기 때문이 아닐까 생각해본다. 파리의 시작은 몽마르뜨 언덕으로 정했다. 내가 묵은 숙소가 몽마르뜨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있다는 이유와 전설적인 예술가의 혼을 만나기 위해서 그 곳을 출발점으로 정했다. 


몽마르뜨 묘지

참을 걸었다. 왠지 또 속았다는 느낌이다. 산을 오를 때 '얼마나 남았나요?'라고 물으면 대부분의 사람들이 '다와 갑니다. 조금만 더 가면 돼요.'라고 말해준다. 세상에... 이 곳 파리에서도 그런다. 이제나 저네나하며 길을 가고 있는데 책에서 본 그곳이 나온다. 몽마르뜨 공동묘지이다. 유럽의 묘지들은 하나같이 공원같다는 느낌을 준다. 사람들의 왕래가 많은 곳에 묘지가 있어도 크게 문제가 되지 않는 듯하다. 생과 사가 연결되어있음을 인정하는 것일까. 우리네에겐 혐오시설로 멀리로, 멀리로 내몰리고 있는 묘지가 이 곳에선 살아있는 사람과 죽은 사람이 함께 공유하는 공간이 된다. 언젠가는 나도 그곳으로 갈 것이라는 것을 이미 받아들인 사람들 같다.




급한 마음을 조금 다독이니 주변의 모습이 더욱 확연히 눈에 들어온다. 제라늄으로 장식된 작은 창가. 프랑스의 작가 생 텍쥐 페리는 [어린왕자]에서 세상에 찌들어버린 어른을 묘사하며 제라늄을 언급했다. 단 한줄의 글귀가 찡~한 마음을 가지게 했었다. 그 때 이후로 제라늄은 내게 단순한 꽃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늘 아침마다 변함없이 피어있는 제라늄을 보며 다짐한다. 생명을 잃은 어른이 되지는 않으리라. 낯선 이국에서 보는 익숙한 꽃이 잠시이지만 많은 생각을 하게 한다.




둘러 왔는데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자리를 잡았다. 역시 파리의 몽마르뜨는 빼놓을 수 없는 곳이구나. 파리에서 가장 높다는 곳에 왔으니 시내 전경을 담아야겠다고 생각하는 사람, 작은 음악회를 열고 있는 사람, 자유롭게 앉아 쉬는 사람, 일주기차를 기다리는 사람, 사크레쾨레 성당 출입을 기다리는 사람... 저마다 자신만의 목적을 가지고 이곳에 서있다. 이들 가운데 서 있으니 내가 그들의 배경이 되는 것만 같다.
나도 이곳을 찾은 목적이 있었다. 몽마르뜨의 화가에게 초상화를 그리는 것. 프라하 카를교에서 화가들을 보며 꼭 초상화 한점 그리고 싶다는 생각을 했었다. 하지만 전날 택시기사에게 거액을 뜯겨버리고는 포기할 수 밖에 없었다. 그러면서 '초상화는 몽마르뜨 화가에게서 그려야하는 거야'라고 나름 합리화시켰다. 손에 닿지 않는 포도를 신포도라 여기며 돌아선 여우처럼 나도 그렇게 돌아설 수 밖에 없었다. 물론 이렇게 빨리 여기를 올 수 있으리라곤 상상도 못했다.




은 시간이지만 자신의 혼을 다해 하나의 작품을 토해내는 작가들과 그들의 작품을 통해 유일한 기념품을 갖고자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이곳에서 충동해서일까. 입구부터 뜨겨운 열기가 그대로 느껴져 쉽게 발걸음을 뗄 수가 없다. 캐리커쳐, 풍경, 정물, 그리고 종이 오리기. 제각기 가장 자신있는 것으로 자신의 능력을 뽐낸다. 나도 있는 그대로의 내 모습을 가장 잘 살려줄 수 있는 사람을 찾아 헤맨다.




그림 실력도 실력이지만 그들의 뒤태도 예술성을 반영하는 듯 범상치 않다.



고 돌는 내 모습을 봤을까. 누군가 말을 붙인다. 
"한국인이세요?" 나도 놀라며 대답했다. 
"어머, 한국분이세요?" 
"네, 여기서 그리세요." 
처음엔 한국관광객을 겨냥한 동양인일거라 생각했다. 
"한국분이시니 잘 해드릴께요." 
"음~ 좀 둘러보고 올께요." 
"그러세요. 그리고 오세요." 

그러고나서 광장을 두바퀴를 더 돌았다. 한국인이라는데 맘이 끌렸을까. 아님 그다지 맘에 드는 화가가 없어서였을까. 자꾸 아까 그 분에게 마음이 쓰인다. 그래서 그 분을 찾아갔다. 그러니 웃으시며 기념으로 하나 그려가라고 말씀하신다. 못이기는 척하며 슬며시 자리에 앉았다. 이렇게 내 생애 첫 초상화를 그린다. 초상화의 주인공이 나니, 여기선 내가 주인공이 될 수 있겠지. "실물보다 쬐금 더 이쁘게 그려주세요."라는 말과 함께 작업을 시작했다. 그런데 아까의 그 웃음은 어디로 가버렸을까. 나를 바라보는 눈빛에서 서늘함을 느낄만큼 눈끝이 매섭고 날카로워진다. 꼭 무언가 잘못한 아이처럼 내가 작아짐을 느낀다.

림을 다 그리고 난 뒤 잠시나마 그 분과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 한국에서 파리로 오신지 거의 30년이 다되가신단다. 이곳으로 올 때 여느 사람들처럼 화가라는 꿈을 가지고 오셨단다. 하지만 비싼 물가탓에 단번에 공부를 마치기엔 역부족이었다고 한다. 그래서 조금씩 끊어가며 공부하다보니 지금까지 이곳에 계시게 되었단다. 그래도 요즘은 다시 예전의 꿈을 생각하며 공부를 시작하셨고 작품활동에 매진하고 계신단다. 시간적 여유가 생기면 이 곳에서 사람들을 만나기도 하시고. 그러시면서 우리가 부럽다고 하신다. 마음놓고 공부할 수 있다는 사실에... 한국으로 돌아오고 싶다고, 그리고 맘편하게 공부하고 싶다고 하시는 말에서 오랜 세월 이 곳에서 외국인으로, 또 한사람의 여성으로 겪어야했던 어려움과 외로움이 동시에 느껴지는 것 같아 맘이 아파왔다. 그래도 한켠으로 다행인 것은 꿈을 위한 희망의 끈을 놓지 않고 계신다는 거다. 

히 사람들은 '꿈'을 아이들의 전유물이라 생각한다. 복잡한 세상에서 어른이 되어서도 꿈을 그리며 살기에는 이 세상이 그리 녹록치 않다고 여긴다. 하지만 나는 다르게 생각한다. 어른이 되어가면서 오히려 그 꿈을 다듬고 완성시켜 나갈 수 있어야 한다. 꿈이 없는 어른들이 가득한 세상은 점점 더 삭막해 질 것이고 웃을 일이 없을 것 같기 때문이다. 꿈을 그리고 있는 한 화가 덕분에 나도 내 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해 본다. 몽마르뜨. 이 곳은 단순한 예술가의 공간이 아니라 꿈의 공작소이다. 그래서 그들에게 주인공의 자리를 내어주어도 전혀 아깝지 않다.




제15회 트레비스트 공모작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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