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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다 마을 이야기(Ocean)/한중일 크루즈(cruise)

[레전드호] 바다 위의 Slow City


<도서관 입구>

파도치는 바다 곁에서 책을 읽고 있는 그녀를 보고 나도 7층 도서관으로 향했다. 크루즈에서 읽겠다고 집에서 가지고 온 책이 있지만 이상하게 발길은 객실이 아닌 도서관으로 향하고 있었다. 어떤 책이 있는지도 궁금했고, 도서관은 어떤 모습인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찾고 있는지도 궁금했다. 이미 많은 사람들이 이곳에서 독서삼매경에 빠져 있다. 모두들 각자의 자리에서 조용하게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보니 괜스레 기분이 좋아진다. 이상하게도 난 책 읽는 사람들을 보면 기분이 좋아진다.

<William Shakespeare & Mark Twain>

도서관 입구는 셰익스피어와 마크 트웨인이 지키고 있다. 300년을 뛰어넘어 그들은 이곳에서 만났다. 어떤 이유로 그들이 만나게 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수백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에게 사랑받고 있다는 공통성을 가지고 있으니 그리 어색한 만남은 아닌 듯 하다. 한 100년쯤 있으면 우리나라 작가도 여기서 볼 수 있으려나.


각종 언어로 된, 생각보다 많은 책들이 도서관에 비치되어 있다. 그리고 크루즈 내에서는 어디든 상관없다. 대출했다가 내리기 전날 저녁 6시까지만 반납하면 된다. 물론 도서관처럼 대출기입장도 있다. 이곳에는 빌리는 사람이 사서의 역할도 함께 한다. 원하는 책을 찾고, 대출기입장을 쓰고, 다 보고 난 뒤에는 원래 있던 자리에 꽂아두고, 반납을 기입하면 된다.

<도서관에 비치된 한국어 도서들>

설마~ 한국어로 된 책이 있을까 했는데 한켠에 조용히 자리하고 있다. 영문서보다는 적은 수이지만 그래도 여행동안 충분히 즐길 수 있을 만큼의 책들이다. 이전에 레전드호를 탄 사람의 블로그에서 한국어로 된 책이 2권 있었다는 이야기를 본 것 같은데 한국 승객이 많아지니 한국도서도 많아졌나보다. 아주 고무적인 현상이다. ^^ 한국사무소의 고대리님 말로는 이번에 이 책들을 구입하게 되었는데 책을 고르는데에 에피소드도 있었다고. 책을 잘 살펴보면 실전포커, 골프입문, 아이폰 메뉴얼도 있다. ^^ 중간중간 읽은 책들이 눈에 띄니 반갑기 그지 없고, 아는 오빠가 쓴 책이 떡하니 자리하는 것을 보니 괜히 뿌듯해 진다.

그래서 나도 이곳에서 책을 들고 나선다. 크루즈에서의 일정동안 2권을 책을 읽었다. 지난 겨울 방학에 기대했던 것보다 책을 많이 읽지 못해 약간 목말라있었는데 예상치도 않았던 이곳에서 목을 축이게 된다. 가볍게 읽고 기분이 좋아진다.

지금, 사랑하지 않는자 모두 유죄
크로아티아 블루

<도서관 전경>

낮에는 사람들이 많아 그들의 독서를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밤에 다시 이곳을 찾았다. 다행히 비어있어 원하는 대로 사진을 찍을 수 있었다. 맘 같아선 이곳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싶지만 '내일 상하이 일정에 차질이 없도록 하기 위해서는 일찍 자야지'라는 생각으로 마음을 부여잡고 내려왔다.


 
도서관에서 가져온 책을 들고 솔라리움으로 향했다. 점심은 먹었지만 약간 출출함도 느껴져 감자튀김과 커피(조금 어울리지 않는 조합이지만)를 들고 선베드 하나에 내 자리를 튼다. 무릉도원이 이러할까. 세상에 이런 평화는 없을 듯 하다. 책을 읽어도 되고, 간식거리를 먹어도 되고, 솔라리움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을 구경해도 되고... 누구하나 뭐라하지 않는, 걸리는 것 하나 없는 이 시간. 돌아와서도 자꾸만 그리워지는 시간이다.

<레전드 밴드>

한참을 앉아 있다가 다시 내려오니 공연팀이 바뀌었다. 하긴 당연한 일이지. 또 하나의 진풍경이 나타난다. 아마도 내일이면 여행을 마무리해야 하는 사람들인 듯 하다. 마지막을 기념하며 여러 컷의 사진을 찍는데 모두의 얼굴에서 얼마나 이번 여행이 즐거웠는지를 말하지 않아도 충분히 읽을 수 있다. 크루즈에서 즐길 수 있는 것들이 그들에게 재미를 느끼게 해주었지만 저렇게 함께할 수 있는 사람이 많았다는 것도 그들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었을 것 같다. 다음 번엔 나도 꼭 동행자를 찾아야겠단 생각을 한다.

<중국인 단체관광객>

<앵커스 어웨이>

'이젠 객실로 돌아갈까'하는 생각을 하며 계단을 오르는데 앵커스 어웨이에 꽤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다. 오전부터 계속해서 방송에서 나오던 빙고게임 시간이 지금인가보다. 그냥 구경이나 해볼까하는 생각으로 들어갔는데 어찌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지나갈 수 있으리오. 정신을 차리기 전에 이미 내 손엔 빙고 게임판이 들려져 있었다.

<빙고게임 중인 사람들>

방송을 들으면서 정말 참여하는 사람들이 있을까 했는데 이곳도 마찬가지이다. 승객들은 곳곳에서 진행되고 있는 프로그램들을 자기만의 방식으로 즐겨가고 있다. 원하는 것, 좋아하는 것들을 선택하면서. Activity manager Becky가 진행하는 로얄빙고는 많은 상금이 걸려있다. 난 도중에 참가하여 많은 기회는 없었지만 처음부터 앉아있던 우리나라 아저씨 한분은 이번 빙고에서 99달러를 획득했다고 한다. 순식간에 한 게임이 지나가는데 제대로 정신차리지 않으면 따라가기가 힘들다. 내가 허우적거리고 있으니 한국인 직원분이 와서 도와준다.

<빙고판>

앞에 있는 전광판 번호에 불이 들어오면 그것을 체크하면 된다. 한번에 6개의 빙고판을 사용할 수 있고, 게임전 제시된 모양과 일치하면 큰 소리로 'Bingo'라고 외치면 된다. 그러면 게임을 보조하던 스탭들이 다가와 확인한 뒤 빙고를 확정해 준다. 내게 비록 빙고는 없었지만 여기저기서 터져 나오는 '빙고'소리를 듣는 것만으로도 흥분되는 시간이다.

★ 카드 6장에 6$를 주었는데 패키지를 이용하면 24장을 16$에 구입할 수 있다!

오늘은 식전 공연으로 공연을 보고 늦은 식사를 위해 로미오 & 줄리엣 식당을 찾았다.

<저녁메뉴>

구운 마늘과 양고기다. 예전 몽골에서 먹었던 양고기보다는 특유의 향도 덜 나고 부드러웠지만 아직 양고기는 내게 익숙하고 편안한 음식은 아닌 것 같다. 밥을 먹고 있는데 Jinjiang이 특별한 퍼포먼스가 있어서 잠시 다녀오겠단다. 도대체 뭐지? 갑자기 음악이 나오면서 주방 스텝들이 줄지어 손을 흔들고, 냅킨을 흔들며 나온다.

<내일 떠나는 승객들을 위한 인사>

알고 보니 내일 떠나는 많은 승객들에게 그 동안 즐거웠다고, 반가웠다고 인사하며 이별을 고하는 자리이다. 주방장부터 시작해서 보조 웨이터까지 모든 사람들이 나와서 최선을 다했음을, 그리고 즐거웠음을 되새기며 인사한다. 가히 굉장한 퍼포먼스다. 물론 우리가 부산에 내리기 전날에도 그들은 같은 모습을 보여주었다. 아리랑과 함께.

<Jinjiang의 마술>

정말 끼가 많은 Jinjiang. 금새 돌아와 마술을 보여주겠다고 하면서 동전과 종이를 꺼낸다. 작은 구멍을 통해 큰 동전을 꺼내보겠다는 것이다. 모두의 시선은 그의 손가락으로 쏟아졌고, 살짝 긴장하는 듯했지만 무난하게 잘 해냈다. 우리가 좋아하고 신기해하니 자꾸 반복해서 보여준다. 그러다가 나중에는 마술의 비법까지 가르쳐준다. 마술의 비법은 알려주는게 아닌데... 너무 순진한 웃음으로 마술을 보여주는 그의 친절과 배려가 너무 고맙다. 함께 보고 계시던 아저씨 한분이 즉석해서 팁을 주시니 입이 귀에 걸렸다. 그날 Jinjiang은 다른 테이블까지 스카웃되어 마술쇼를 선보였다.


냅킨으로 신발을 접어보여주는 것으로 오늘 저녁식사를 마무리한다. 저런 쇼맨쉽이면 진행자로 한 자리 차지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든다. 레전드에서 만난 최고의 웨이터로 꼽는다. 물론 다른 웨이터들도 너무 친절하고 친근하지만... 그의 Magic에 빠져버렸다. ^^;



 
쉼으로 채워보자는 생각은 이미 오전부터 날아가버렸다. 너무나 할 것들이 많고, 볼 것들도 많아 정신없이 크루즈를 휘젓고 다녔다. 일단 부른 배를 꺼트리고 잠자리에 들어야겠단 생각으로 다시 10층 조깅트랙에 나갔다가 객실로 돌아온다. 오늘은 일찌감치 잠자리에 들어야 내일 일찍부터 상하이 관광이 가능할텐데 이미 시계는 11시를 향한다. 정리하고 잠자리에 드니 12시가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