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서쪽 마을 이야기(Europe)/이탈리아(Italy)

[Venezia] 어둠 속에서 만난 베네치아


베로나를 떠난지 1시간여 만에 오늘의 종착역 메스트레(Mestre)역에 도착했다. 기차에서 내리면서 푸르게 넘실대는 드넓은 바다와 그 사이에 봉긋이 솟아있는 성당의 돔들, 그리고 그 주변에 옹기종기 모여 바다와 입맞춤하고 있는 작은 집들을 상상했다. 그런데 나의 상상과는 너무나 다른 모습이다. 메스트레 역을 중심으로 오른쪽과 왼쪽으로 확연히 구분되어 산업지대와 주택지역이 나누어 진다. '어라? 잘못 내렸나? 분명히 메스트레역이라고 했는데...' 베네치아 본섬에 있는 산타 루치아역이 아니기에 조금 달라보일 거란 예상은 했지만 이렇게 다른 모습일지는 몰랐다. 그래도 다행히 잘못 내린 것은 아니었다.

pick up나와 주신 호텔(베니스 텔박) 아저씨를 만나 호텔로 들어가 베네치아에 대한 기본적 설명을 들었다. 이 곳에 뜻밖의 선물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으니... 4시가 넘어 도착해 이것저것 정리하고 호텔방으로 들어가니 갑자기 노곤해진다. 다른 때 같았으면 빨리 카메라를 챙겨들고 밖으로 나갔겠지만 긴여행이다 보니 컨디션 조절을 잘 해야 끝까지 갈 수 있다는 생각에 일단은 좀 쉬기로 했다. 나를 기다린 뜻밖의 우연한 선물! 도미토리를 예약했는데 약간의 오류(내겐 행운)가 생겨 1인실을 쓰게 된 것이다. 이름이 남자이름 같다보니 남자로 생각하고 남자 도미토리를 준비해둔 거다. 호호~ 덕분에 2박 3일 이곳에서 머무르면서 저렴한 비용으로 너무나 편안하게 보낼 수 있었다. 이후에도 이름때문에 생긴 오류가 몇 번 있었지만 아쉽게도 1인실을 쓰는 행운까진 얻지 못했다.
일단 짐을 풀고나니 지금까지 한번도 씻지 못했던 빨래거리들이 줄줄이 나온다. '낮잠 한숨 자야지'라고 생각했는데 빨래가 내 달콤할 뻔 했던 낮잠을 앗아갔다. 그래도 이렇게 편안한 공간에서 씻을 수 있는데 뭘 더 바라겠나. 깨끗하게 씻고, 창문가 바람에 빨래를 널어 말리면서 저녁식사를 먹기 위해 나섰다. 물론 저녁식사도 호텔에서 제공해주는 것으로...
베로나에선 계속 혼자다녀 약간의 외로움이 느껴지기도 했는데 저녁식사를 하면서 출장차 독일에 왔다가 휴가로 연결해서 베네치아로 온 언니를 만났다. 그래서 베네치아에서의 일정은 그 언니와 함께하게 되었다. 일행이 생겨 조금은 푸근한 마음으로 저녁의 베네치아를 만나러 본 섬을 향해 간다.

<리베르타 다리(Ponte della Liberta)>

메스트레역이 있는 지역과 산타루치아역이 있는 본섬 지역을 연결하는 유일한 길이다. 이 길을 통해 기차도 가고, 버스도 가고, 사람도 간다. 이 길이 아니면 바다를 통하지 않고서는 베네치아에 닿을 수 없다. 리베르타라고 불리는 이 다리는 1933년 무솔리니(Mussolini, Benito Amilcare Andrea)가 만든 것으로 일명 '자유의 다리'라고도 부른다. 처음 이 다리가 만들어졌을 때엔 '리또리오 다리'라고 불렸는데 세계 2차 대전 끝나고 난 뒤 현재의 명칭으로 바뀌었다. 장장 3.85km의 길이를 가졌다. 지금이야 우리동네에도 20km가 넘는 바다 위의 다리(인천대교 2가 생겼지만 당시로서는 엄청난 사업이었을 거다. 무엇보다 '무솔리니'와 '자유'라... 이 어찌 생각해야 하나? 누군가는 조지오웰이 말한 Newspeak 현상으로 보면 그다지 이해되지 않을 것도 없다고 한다. 쉽게 말하면 '눈속임? 눈가리고 아옹?'라고나 할까. 어찌됐건 무솔리니 덕분에 한바탕 웃는다.

<선착장의 크루즈선>

선착장에 몇 대의 크루즈선이 보인다. 오늘의 기착지는 베네치아인가 보다. 얼마전 크루즈 여행이 떠오른다. 그땐 덩그러니 서 있는 우리 크루즈선 밖에 볼 수 없었는데 여러 대의 크루즈선이 서 있는 걸 보니 꼭 주차장에 대기시켜 놓은 자가용인양 느껴진다. 역시, 물의 도시는 다르구나.

<베네치아 입구>

드디어 버스에서 내려 베네치아 입구에 당도했다. 자유의 다리를 건너면서 부터 감탄사가 꼬물꼬물 입을 통해 터져나오더니 이제는 내가 주체할 수도 없을 만큼 마구 터져나온다. 고개를 돌리는 곳마다, 눈이 향하는 곳마다 감탄사를 연발하게 만드니 내가 엄청나게 극성스러운 사람으로까지 느껴진다. 그 정도는 아닐텐데... ㅎㅎ 자꾸만 아이와 같아지는 것 같다.

<베네치아 버스 승차권>

베네치아는 차가 다니지 않는 곳으로도 유명하다. 아마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지 중 네발로 굴러다니는 차를 찾을 수 없는 곳은 여기가 유일하지 않을까 싶다. 그렇다고 교통수단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물론 11번 버스라 불리는 두 다리로 둘러본다면 더 많은 것들을 찬찬히 볼 수 있겠지만 이런저런 여건들을 고려해서 우리가 선택할 수 있는 것이 '바포레토'라 불리는 수상버스와 수상택시, 트라게토라 불리는 작은 배이다. 물론 곤돌라도 있지만 요금이 비싸니 나 같은 여행자에겐 아직 그림의 떡일 수 밖에 없다. 이탈리아 최고 물가에서 빠지면 서러울 베네치아이기에 교통요금도 상당히 비싸다. 수상버스인 바포레토는 1회권부터 12시간권, 24시간권, 36시간권, 48시간권을 선택적으로 구입할 수 있는데 일단 내일까지 생각해서 24시간권(18 Euro)을 구입했다.

<베네치아 지도>

일반적으로 베네치아 관광은 로마광장이나 산타 루치아역에서 시작된다. 짧은 시간동안 베네치아를 최대한 다양하게 볼 수 있는 방법이 뭐가 있을까 고민하다가 선택한 것이 대운하를 따라 베네치아를 둘러보는 경로(사실 대운하 주변으로 아주 많은 것들이 몰려있다)를 선택했다. 로마광장에 있는 바포레토 정류장(노란원으로 된 곳)에서 1번을 타고 대운하를 건너 산마르코 광장(흰숫자 1, 빨간선)에 내려 둘러본 후 도보로 리알토 다리까지(흰숫자 2, 초록색선) 가서 다시 바포레토를 타고 로마광장으로 가는 루트(흰숫자 3)이다. 고민하고 있는 내게 호텔 사장님께서 이 경로를 통해 가면 짧은 시간에 베네치아의 가장 많은 것들을 볼 수 있다고 말씀해 주셨다. 물론 내일과 모레, 2일간의 시간이 있지만 더 빨리 보고싶은 성급한 마음을 다스리기가 힘들다(베네치아를 찾는 모든 사람들의 마음이 그렇지 않을까).
대체로 베네치아의 관광구역은 4지역으로 나눠지는데 첫번째가 프라리 광장 구역, 두번째는 리알토 다리가 있는 구역, 세번째는 산마르코 광장이 있는 구역, 네번째가 미술관과 컬렉션들이 몰려있는 구역이다(보라색 숫자로 표시). 그러니 바포레토와 도보를 적절히 이용하면 짧은 시간에 많은 것들을 살펴볼 수 있다. 조금 더 시간이 있는 사람들은 나와 같은 루트로 가다가 리알토에서 버스를 타지 말고 도보로 산타 루치아역까지 갈 수도 있다(파란색 선). 조금 더 있는 사람들은 네번째 구역에서부터 도보를 하면 된다. 하지만 좀... 힘들거다.
다시한번 자세한 자료를 알려주신 호텔 사장님께 너무 감사드린다. 덕분에 시간지체없이 둘러볼 수 있었다. 물론 천재지변이 내 앞길을 막긴 했지만...

<베네치아의 작은 수로들>



베네치아(Venezia)

물고기 모양으로 생긴 베네치아는 이탈리아어로 '다시 오고 싶다'라는 뜻을 가졌다고 한다. 118개의 섬과 177개의 운하, 400여개의 다리로 만들어진 말그대로 핸드메이드(handmade) 도시이다. 행정상으로는 6개의 구역으로 나누어져 있는데 이러한 구분은 1171년에 만들어진 것으로 현재까지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여의도의 3.5배에 달하는 크기로 바다 깊숙히 나무 말뚝을 박아놓고 그 위에 5개 층의 대리석 돌판을 얹어 그 위에 도시가 만들어졌다. 땅에도 만들기 힘든 건물들을 나무 위에, 돌판 위에 세웠다 생각하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살루테 교회에만도 15만개의 나무 말뚝이 박혀 있단다.
베네치아는 중앙을 가로지르는 'S'자 대운하가 있다. 일명 '베니스 상인'이라고 불리는 대상인들이 무역을 하던 곳이 바로 이 대운하 지역이다. 그래서 지금도 대운하를 따라 내려가다보면 물건을 가득히 싣고 가는 배들을 만날 수 있다.
슬프게도 베네치아는 1960년대 부터 조금씩 침하하고 있다. 지금까지 총 23cm가 내려앉았다고 하고, 이러한 움직임이 계속 진행중이다. 지금도 밀물이 들어오면 산마르코 성당은 바닷물로 첨벙인다고 하니 어쩌면 아름다운 하나의 도시가 바다 속으로 들어갈 날이 머지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베네치아 해산물들>

바다에 인접한 도시라 그런지 해산물들을 팔고 있는 레스토랑들이 많이 보인다. 꼭 우리 횟집같은 느낌이다. 조금 다르다면 우리는 살아있는 것들을 많이 볼 수 있는데 여긴 식당인데도 이렇게 꽁꽁 언 얼음 속에서 손님들을 기다린다는 것이다. 그래도 색이 선명하니 너무 맛있을 것 같다.

<베네치아의 상점들>

베네치아하면 떠오르는 독특한 물건들... 그 중 제일은 뭐니뭐니해도 탈일 것이다. 크기도 다양하고, 모양도 다양하고, 재질도 다양해 하나 사려고해도 고르기가 쉽지 않다. 그저 걸려있는 탈들만 봐도 가면무도회 속으로 들어와 있는 듯 하다. 늦은시간에 오니 안으로 들어 구경할 수 없어 아쉽지만 밖에서라도 사진을 맘 놓고 찍을 수 있으니 그건 좋은 점이다.

<리알토 다리>

산마르코 광장에서 대운하의 중간지점을 지키고 있는 리알토 다리(높은 제방이라는 뜻)까지 걸어왔다. 베네치아에서 가장 많은 사람들이 오가는 곳 중 한 곳으로 13세기에 처음 만들어졌는데 그땐 현재의 모습이 아닌 목조다리였다고 한다. 이 주변이 베네치아 본섬에서 가장 오래된 삶의 거점이다. 이곳에서 정착하기 시작해 시장, 은행 등이 생겨났고, 바쁘고 복잡한 도시를 형성했다. 베네치아의 많은 다리들이 바닷물로 인해 부식되어 생명을 다한 것처럼 이곳 다리도 그랬나보다. 1591년, 건축가 안토니오 다 폰테가 대리석으로 튼튼한 다리를 새로 만들어 지금까지 그 모습을 이어가고 있다. 1854년 아카데미아 다리가 생길 때까지 대운하를 가로지르는 유일한 다리였다고 한다.


<리알토에서 보는 대운하>

 
<리알토 다리>

다리의 안쪽을 걸으면 작은 골목 속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착각을 가지게 한다. 그러고 보니 이탈리아의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들은 이런 형태가 종종 보인다. 실용성을 더하기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안쪽으로는 상가를 연결시킨 덕분에 이곳을 오가는 여행자들은 다리를 건너면서도 구경할 수 있는 것들이 많다. 그렇다고 다리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을 포기하라는 건 아니다. 중앙에는 다리 넘어의 모습들을 볼 수 있도록 오픈시키는 작은 센스도 잊지 않았다. ^^




조금씩 베네치아가 잠들어 간다. 나는 아직 생생한데 내 맘을 몰라주는 것 같아 섭섭하기도 하다. 흔들어 깨우고 싶은 이기적인 마음이 들지만 그러면 내일의 베네치아를 보기 힘들 것 같아 그 마음도 꾹 눌러 담아둬야 겠다. 짧은 시간 베네치아 일주는 이렇게 끝났다. 어둠이 삼켜버린 베네치아는 적막함이 가득히 내려앉았지만 내일을 위한 숨고르기니 더 활기찬 내일을 보여주겠지. 그 기대를 담아 나도 휴식을 취해야 겠다.